오늘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SNS 없는 하루의 길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1. 멈춘 시계처럼: 스마트폰이 조용한 아침
아침은 여전히 같은 시각에 온다. 창밖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알람은 제때 울린다. 하지만 무언가 결정적으로 달라져 있다. 손이 스마트폰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 잠에서 눈을 뜬 직후, 이전의 나는 무의식처럼 휴대폰을 들고 인스타그램을 켰고, 밤 사이 도착한 알림들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뉴스 피드, DM, 팔로워의 아침식사 사진, 누군가의 짧은 영상 속 웃긴 장면들. 하루의 첫 시간은 그렇게 '누군가의 삶'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SNS를 끊은 지금, 침대에서 눈을 뜨고도 할 일이 없다. 문자나 전화도 오지 않았고, 확인해야 할 피드도 없다. 그렇게 아침의 몇 분은 상상보다 훨씬 더디게 흘러간다. 마치 시계가 고장 난 듯, 초침이 움직이지 않는 기분이다. 손에 들린 핸드폰이 더 이상 ‘세상과 연결된 포털’이 아닌 순간, 나는 오롯이 ‘나 혼자’라는 자각을 한다. 그 순간은 무겁고, 낯설고, 때로는 공허하다.
무언가 ‘채워넣는’ 아침이 사라진 자리에, 진공처럼 비어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 진공 속에서 처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5분, 10분, 겨우 15분이 흘렀을 뿐인데도 이상하게 시간이 오래 지난 것 같은 느낌. SNS가 사라지자, 시간은 유례없이 천천히 움직였다.
익숙한 일상의 시작이 무너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루는 예상보다 훨씬 더 넓어졌고, 그 안에 나를 오롯이 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서서히 밀려들기 시작했다.
2. 텅 빈 오후의 풍경: '할 일 없음'이라는 감각
오후 3시. 이전 같으면 이 시간은 가장 활발한 SNS 활동의 황금 시간대였다. 커피를 마시며 가볍게 피드를 훑고, 피곤한 뇌를 짧은 릴스 영상으로 달래던 루틴. 하지만 SNS가 없는 지금, 오후 3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게 찾아온다. 할 일이 끝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텅 빈 느낌. 명확히 바쁜 것도, 명확히 쉬는 것도 아닌 공백의 시간.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시간은 처음엔 불편하고 무기력했다.
이전의 나는 자투리 시간마다 작은 ‘도파민 보상’을 챙겨왔다. 스크롤을 내리는 행위 하나로 얻는 짧은 웃음, 감탄, 공감의 순간들. 이 작은 자극들이 반복적으로 하루를 구성했다. 하지만 이제는 없다. 그렇게 마주한 오후는 지나치게 조용하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익숙했던 디지털 소음이 사라진 세계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자극에 길들여져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이 무감각한 오후를 견디기 위해 나는 작은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고 공기를 바꾸거나, 평소라면 넘기고 말았을 긴 에세이 한 편을 천천히 읽는다. 손으로 노트에 생각을 적기도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렇게 채워지는 오후는 이전보다 훨씬 길고, 풍부하고, 조용한 만족을 준다. 스크롤이 없는 시간은 느리지만, 그만큼 ‘감각’이 살아나고 있었다.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텅 빈 오후는 사실, 삶이 가장 깊어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3. 길어진 저녁, 진짜 나와의 대화가 시작된다
저녁은 유독 더 길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그저 휴식만이 남은 시간. 예전에는 드라마를 보며 동시에 SNS를 켜고, 중간중간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질적인 정보가 머릿속에 동시에 흐르며, 저녁은 언제나 바쁘게 흘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SNS가 사라진 자리에는 유예된 시간이 남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시간이 오히려 나를 가장 괴롭게 했다.
처음 며칠은 무엇으로든 그 시간을 채우려 했다. 책, 영화, 청소, 운동.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초조함.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나는 '쉰다'는 개념조차 SNS 중심의 삶 속에서 잊고 있었다는 것을. 과거의 쉼은 사실 끊임없는 연결이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소비하면서도 나 자신과의 진짜 대화는 없었다. SNS 없는 저녁은 처음으로 나를 내 앞에 앉힌다.
아무 필터 없이, 아무 자극 없이. 그냥 나.
그 순간이 때로는 불편하다. 나 자신이 마냥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후회, 불안,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조용히 올라온다. 이전에는 SNS의 빠른 정보 흐름 속에 눌려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것들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조용히 듣고, 받아들이고, 지나가게 둔다. 그러다 보면 저녁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 정리와 회복의 시간이 된다. SNS가 없다는 건 결국, 그 시간 동안 나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뜻이었다.
이제 나는 저녁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반갑다. 길고 조용한 저녁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다가와 나를 껴안는다. SNS 없는 하루는 그렇게, 느리지만 확실하게 내 삶의 밀도를 바꾸고 있었다. 시간은 여전히 24시간이지만, 그 안에 담기는 나의 깊이는 분명 전과는 달라졌다.